김치볶음밥 (재료 선택, 볶음 순서, 계란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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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김치볶음밥을 만들었을 때 순서도, 재료 비율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김치랑 밥 넣고 휘저으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먹어보면 식당 맛이 안 나고, 뭔가 한 끗이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그 '한 끗'이 뭔지 직접 여러 번 만들어보면서 하나씩 알게 됐는데, 오늘은 그 과정을 그대로 풀어보려 합니다.
재료 선택: 김치 상태와 가공육이 맛을 결정합니다
김치볶음밥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가 뭐냐고 물으면 당연히 김치라고 하겠지만, 그 김치가 어떤 상태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처음엔 몰랐습니다. 일반적으로 신김치(산도가 높아 새콤한 맛이 강한 숙성 김치)를 써야 맛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써보니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신김치란 젖산 발효(lactic acid fermentation)가 충분히 진행되어 유산균이 신맛을 만들어낸 상태의 김치를 말합니다. 젖산 발효란 당분이 유산균에 의해 분해되면서 산미가 생기는 과정입니다. 이 신맛이 볶음 과정에서 열을 만나 감칠맛으로 바뀌기 때문에, 덜 익은 김치보다 훨씬 깊은 맛이 납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갓 담근 생김치, 즉 김장 한지 2~3일 된 상태의 김치도 꽤 좋아합니다. 이걸로 볶음밥을 만들어도 배추 특유의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어서 나름의 매력이 있더라고요. 다만 이 경우에는 설탕을 넣으면 단맛이 두 배로 올라가기 때문에 설탕을 확 줄이거나 아예 빼는 게 낫습니다. 저는 단맛을 좋아하는 편이라 신김치가 아닐 때도 설탕을 아주 조금 넣는데, 단맛이 불편하신 분들은 반드시 빼기를 권합니다.
가공육 선택도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저는 주로 햄이나 소시지를 넣어서 만드는데, 소시지를 쓸 경우에는 얇게 써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밥 한 숟가락에 소시지 조각이 하나씩 얹혀야 먹는 맛이 나거든요. 만약 두껍게 썰면 소시지가 듬성듬성 들어가서 한 입에 맛의 밸런스가 흐트러집니다. 특히 미국산 핫도그용 소시지처럼 나트륨 함량이 높은 제품은 그냥 쓰면 전체 간이 짜질 수 있으니, 끓는 물에 충분히 데쳐서 짠맛을 빼고 쓰는 것이 좋습니다.
집에 버섯이 있으면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저도 냉장고에 버섯이 남아 있으면 자연스럽게 넣는 편인데, 이상하게 어울리는 재료와 안 어울리는 재료를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웬만한 건 다 괜찮습니다. 오이소박이 김치처럼 오이가 들어간 김치는 볶으면 식감이 이상해지지만, 깍두기나 총각김치는 잘게 다져서 쓰면 훌륭한 대안이 됩니다.
볶음 순서: 파기름부터 순서가 곧 맛입니다
혹시 김치볶음밥을 만들 때 재료를 그냥 한꺼번에 넣고 볶으시나요?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 볶음 순서를 바꾸고 나서 맛이 확 달라졌습니다. 이 순서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맛의 구조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걸 알고 나서야 왜 식당 볶음밥 맛이 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먼저 파기름을 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파기름이란 식용유에 파를 먼저 볶아 파의 향미 성분을 기름에 녹여내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렇게 만든 기름으로 이후 재료를 볶으면 기름 자체에서 고소한 향이 배어 나옵니다. 파가 없으면 마늘이나 양파로 대체해도 충분히 향이 납니다.
파기름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소시지나 햄을 먼저 넣고 노릇하게 볶습니다. 가공육이 기름에 바싹 볶아지면서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 일어납니다. 마이야르 반응이란 단백질과 당분이 열에 의해 결합하면서 갈변과 함께 복잡한 향미가 생성되는 화학 반응으로, 구운 고기나 빵 껍질에서 느껴지는 그 구수한 맛의 근원입니다. 이 단계를 제대로 거치면 가공육에서 나오는 풍미가 기름에 녹아들어 전체 볶음밥의 맛 기반이 만들어집니다.
가공육이 노릇해지면 설탕을 소량 넣고, 그다음 간장을 넣어 눌려줍니다. 간장 눌리기란 달궈진 팬에 간장을 떨어뜨려 순간적으로 증발시키면서 메일라드 반응으로 깊은 향을 만드는 기법입니다. 이때 팬에서 연기와 함께 향이 확 올라오는데, 그 향이 볶음밥 전체에 배어드는 겁니다. 실제로 해보면 그 향 하나만으로도 "아, 이게 볶음밥 냄새구나" 싶습니다.
그다음 김치를 넣는데, 이때 김치 국물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또 관건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국물을 넣지 않는 것이 권장되지만, 저는 가끔 국물을 두세 숟가락 넣고 세 불에서 수분을 날리는 방식을 씁니다. 수분 증발(evaporation)이란 가열을 통해 액체 성분을 기체로 날려버리는 과정인데, 이렇게 하면 김치의 깊은 맛은 남기면서 질척한 식감은 줄일 수 있습니다. 질척한 볶음밥이 괜찮으신 분들은 굳이 수분을 다 날릴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완전히 취향의 문제입니다.
집에서 볶음밥 만들 때 꼭 지키면 좋은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식용유를 두르고 파(또는 마늘, 양파)를 먼저 볶아 파기름을 낸다
- 소시지나 햄 등 가공육을 넣고 노릇하게 볶는다
- 설탕을 소량 넣어 녹이고, 바로 간장을 팬에 눌려 향을 낸다
- 김치를 넣고 함께 볶는다. 재료가 뭉치면 물을 약간 넣어 풀어준다
- 불을 끄고 즉석밥(또는 미리 식혀둔 밥)을 넣어 으깨면서 섞은 뒤, 다시 불을 켜고 볶는다
밥을 넣을 때는 즉석밥 기준으로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않고 바로 봉지째 뜯어서 으깨며 섞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갓 지은 밥을 쓸 경우에는 2인분 이상이라면 미리 넓은 접시에 펼쳐 식혀두는 것이 좋습니다. 밥에 수분이 많으면 볶는 과정에서 뭉치거나 질어지기 쉽습니다.
계란프라이: 김치볶음밥의 완성은 여기서 결정됩니다
김치볶음밥에 계란프라이가 꼭 필요하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단호하게 "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김치볶음밥에 빠뜨리지 않는 게 하나 있다면 바로 계란프라이인데, 이게 있고 없고의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볶음밥의 짭조름하고 새콤한 맛을 계란 노른자가 감싸주면서 맛이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계란프라이를 올릴 때 한 가지 팁이 있습니다. 기름을 충분히 두르고 센 불에서 튀기듯 익히면 가장자리가 바싹하고 노릇하게 튀겨집니다. 이 방식을 태국식 계란프라이라고도 부르는데, 흰자는 바삭하고 노른자는 반숙으로 남는 식감이 볶음밥 위에 얹었을 때 최고로 어울립니다. 물론 완숙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취향이 우선입니다.
마무리 토핑으로는 빻은 깨와 김가루를 추천합니다. 통깨(whole sesame seed)를 그냥 뿌리는 것과 절구에 한 번 빻아서 뿌리는 것은 향 차이가 꽤 납니다. 빻은 깨는 껍질이 깨지면서 고소한 지방 성분이 방출되어 향이 훨씬 강하게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집에 작은 절구가 하나 있으면 이럴 때 정말 유용합니다. 참기름은 좋아하시는 분들만 마지막에 한두 방울 떨어뜨리면 되는데, 너무 많으면 오히려 느끼해지니 조금만 쓰는 것이 낫습니다.
김치볶음밥의 영양 구성과 관련해서는, 농촌진흥청에서 운영하는 식품성분 데이터베이스(출처: 농촌진흥청)를 보면 발효 김치에는 유산균, 비타민 C,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볶는 과정에서 열에 의해 일부 성분이 파괴되기는 하지만, 감칠맛 성분은 오히려 강화됩니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가공육에 포함된 나트륨 함량에 주의를 권고하고 있으므로, 소시지나 햄을 사용할 때는 간장 양을 조절해 주시는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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